스노우 vs 스타트업 탈취 논란 : 그냥 기획안만 보여달라고 했을 뿐입니다
“이거, 진짜로 되겠는데요?”
회의실의 공기가 달라졌다.
한쪽 벽에 띄운 PPT 속 콘셉트는 단순하지만 강했다.
스타가 평범한 사람처럼 일상 속에 ‘강림’하는 포맷.
기획자는 오래간만에 확신이라는 감정을 느꼈다.
“이건, 우리가 먼저 해야 해.”
하지만 문제는 자금이었다.
이 아이디어를 실제로 구현하려면 꽤 큰 제작비가 필요했고,
내부 예산만으론 불가능했다.
그때 마침 들어온 제안이 있었다. 중국계 콘텐츠 투자사였다.
“한국 예능의 창의성에 감탄하고 있습니다.”
“공동 제작과 글로벌 판권 유통까지, 저희가 도와드릴 수 있어요.”
말은 아주 그럴듯했다.
몇 번의 미팅이 이어졌고, 기획자는 어느새 상대방의 이메일로 기획안 전체를 보내고 있었다.
제작 방향부터 회차 구성, 캐릭터 설정까지—
“이거 보여주면 마음이 확실히 움직일 거야”라는 생각이었다.
투자가 성사되면, 이 아이디어는 진짜 세계로 나갈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 뒤로 며칠, 몇 주.
“아직 내부 결재 중입니다.”
“파트너사 쪽에서 조금만 더 검토를…”
미뤄지는 계약. 조금씩 불안이 쌓였다.
그리고 어느 날,
아무 말도 없이 연락이 끊겼다.
기획자는 ‘그럴 수도 있지’라며 애써 넘겼다.
정말 그럴 수도 있는 일이라고 믿고 싶었다.
하지만 몇 달 뒤,
우연히 TV에서 낯익은 장면을 보게 됐다.
스타가 일반인처럼 등장했고,
그 반응을 관찰하고, 감정을 주고받는 예능 포맷.
너무 익숙했다.
기획안에서 봤던 구성 그대로였다.
스크롤을 내려보니, 제작진 명단 속 이름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 투자사.
이쯤 되면 누가 보더라도 ‘표절 아니냐’는 생각이 들 법하다.
기획자는 화가 났다.
자료를 모으고, 법률 자문을 구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명확했다.
“계약이 없으면, 법적 책임을 묻기 어렵습니다.”
“기획안은 표현되지 않은 아이디어 수준이어서 저작권 보호도 힘듭니다.”
기획자는 그 자리에 오래 앉아 있었다.
모든 걸 설명한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다.
문서를 넘긴 건 자신이었고, 계약은 받지 못했으며,
그저 믿고 움직였다는 사실이 어리석게만 다가왔다.
하지만 과연 어리석기만 한 걸까?
이건 단지 한 방송사의 실수가 아니다.
누구라도 그 자리에 있었으면, 같은 선택을 했을 수 있다.
글로벌 진출이라는 말 앞에서, 자본과 유통망이라는 제안 앞에서,
‘우리는 이런 거 잘해요’라는 온화한 미소 앞에서.
기획자는 조심스러워지기보다,
조급해졌을 것이다.
‘이거 놓치면 어떡하지?’
‘우리보다 더 빨리 가져가는 데가 생기면?’
불안은 신중함을 마비시킨다.
심리학적으로도, 이런 상황에서는 합리성보다 손실회피 심리가 강하게 작동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 심리를 상대방은 더 잘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방송사만의 일이 아니다.
스타트업도, 프리랜서도, 1인 창작자도 똑같은 경험을 하고 있다.
최근 어보브테크라는 스타트업 대표가 SNS에 공개한 글도 비슷한 이야기였다.
자신들이 먼저 개발한 AI 기반 헤어스타일 추천 서비스를
네이버 자회사 스노우와 협업하려 논의했지만,
끝내 계약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이후 유사한 기능이 스노우 앱에 구현됐다는 내용이었다.
사실관계는 다툼의 여지가 있다.
실제로 도용이 있었는지, 유사성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에 대해선 법원이 판단할 일이다.
하지만 구조는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
협업 제안 → 정보 공유 → 계약 미체결 → 독자적 실행
이 구조에서 피해자가 되는 쪽은
항상 작은 조직, 낮은 자본력, 계약서를 먼저 꺼내기 어려운 사람들이다.
그들이 기댈 수 있는 건 딱 하나다.
NDA(비밀유지계약) 한 줄.
아이디어를 보호해 줄 수 있는 유일한 문장.
하지만 현실에선 그조차도 꺼내기 어렵다.
아직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자리에서,
계약서를 꺼내는 순간 흐려지는 협업의 공기.
기획자는 스스로를 불편하게 만드는 사람이 되길 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계속해서,
설명하고, 공유하고, 보여준다.
그리고 어느 날, 그 아이디어는
다른 이름으로, 다른 브랜드 아래에서
‘공식 서비스’가 되어 세상에 나온다.
나는 변호사다.
그렇기에 너무 많은 창작자, 기획자, 스타트업이
계약이 없다는 이유 하나로 법적 보호에서 배제되는 모습을 봐왔다.
창작의 시작은 언제나 ‘상상’이지만,
법적 보호의 시작은 ‘서명’이다.
그리고 그 사이의 간극에서,
수많은 아이디어가 조용히 사라져왔다.
세상은 법으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나는 법을 알고, 법을 쓰지만,
그래서 오히려 바란다.
법 없이도 말이 되는 사회.
계약 없이도 도리를 지키는 협업.
그런 세상이 조금 더 많아지기를.